모두가 바다의 무늬를 보는 건 아니다.
<마산>은 2024년 11월 출간된 김기창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김기창 작가는 고독사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모나코>로 2014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이후로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다룬 <방콕>, 단편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등의 작품에서 사회적 문제의 한가운데서 흔들리는 인물들을 꾸준히 그리고 있습니다. 전작 중에서는 <모나코>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모나코>는 '고독사를 다룬'이라는 납작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입체적인 작품입니다. 홀로 사는 노인을 그리고는 있지만 흔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의 흐름이 펼쳐집니다. 빈곤하고 고독한 일상을 견뎌내는 노인, 혼자서 맞아야 하는 고약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야기를 예상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작가는 흥미로운 형태의 대안적 가족을 제시하기도 하고 예측과 역행하는 연대와 돌봄의 방향성을 역동적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 <마산>에서도 여전히 땅에 발을 딛고 선 이야기들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풀어냅니다. 작품의 배경인 '마산'이라는 도시는 작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마산이라는 도시, 그리고 대한민국이 크게 격변했던 시기를 1974년, 1999년, 2021년으로 꼽습니다. 각 시대의 풍랑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젊은이들, 그러므로 운명처럼 마산 앞바다의 변하는 무늬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책의 줄거리
이 책의 결말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줄거리를 소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얽기섥기 얽힌 이야기의 레이어가 책의 끝 부분에서 부채처럼 활짝 펼쳐지며 끝나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지나며 복잡하게 연결된 인물들의 관계성과 예측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월을 넘어선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게 지켜볼 독자들을 위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미리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1974년 동미
돈 가지고 도망가요. ...
동미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동미는 눈물을 닦으며 계속 말했다. 사회의 모든 폭력과 억압이 남김없이 자기의 목줄이 되는 사람. 동미는 처음으로 자기의 고통에 실체를 부여했다. 어머니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327쪽)
처음부터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특이한 점은 동미가 책의 화자인 것처럼 서술되는 이야기들이 실제로는 동미의 동생이 화자라는 점입니다.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들도 실제로는 '동미의 동생' 시점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작가의 실수인지,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로 인한 장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남성 화자가 풀어내는 여성 인물의 표현은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70년대 운동권 후일담을 주로 쓰는 여성 작가들이 풀어내는 그 시대의 여성들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 마산 앞바다의 풍랑을 헤쳐나가는 동미의 방식이 그래서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99년 준구
쏟아지는 불행들의 예외가 된 것을 행운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러한 불행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사회 시스템의 일시적 오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얼마 후, 준구는 자신을 비껴가지 않은 불행도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전역 신고를 마치고 찾아간 마산의 집은 전기, 수도, 가스가 끊긴 채 경매에 넘어갔고, 부모님들은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것을 주요 일과로 삼는 중이다. (57쪽)
1999년의 대한민국은 IMF로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했고 국민들 대부분이 각자 자기 몫의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준구와 레나의 행보, 그리고 아직은 부모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오지 못한 덜 자란 어른인 이들이 떼어내야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들은 닮은 듯이 냉소적이지만 그 냉소의 기원은 조금 다른 듯합니다.
2021년 은재와 태웅
적당히 사는 것조차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된 것일까?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게으름 피우고, 적당히 웃고 울며 살았던 것의 결과라고 하기엔 서울 지역 대학 출신 학생들과 지역 대학 학생 간의 차이가 너무 컸다. 적당히 노력했으면 적당히는 살 수 있어야 했다... 적당히가 나쁜 것이었나? 가장 인간적인 상태가 적당히가 아니었나? (86~87쪽)
은재와 태웅까지 되풀이되는 무능한 삶의 형태들을 지켜보다보면 "개인은 시궁창 같은 현실을 혼자서 만들 수 있을 만큼 유능하지 않"다는 말에 동의하게 됩니다(13쪽). 작가는 각자의 인물들에게 독자를 납득시킬 만한 변경의 기회는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나 빈곤의 무게를 말하는 책이 아니니까요. 마치 마산이라는 도시의 정취가 딱 그렇습니다.
덧붙여,
줄거리를 더 소개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쓰는 재미보다는 읽는 재미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때문에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비교하며 읽어볼 책으로 은희경 작가의 <비밀과 거짓말>을 추천합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도시를 고향으로 둔 이들이 갖는 고향에 대한 향수, 또는 진저리 나는 애증의 감정이 있습니다. 비록 도시의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했지만 책을 읽으며 자연히 떠오르는 도시가 있습니다. 지방 도시가 시대에 따라 출렁이던 풍경과 그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소름 끼치도록 세밀하게 묘사한 책입니다.
<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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