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행복한 쪽은 누구인가
1932년에 발표된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1894~1963)의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는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힙니다. 헉슬리는 완벽하게 계산하고 통제하는 극한의 전체주의 세계를 상상합니다. 이 세계는 전체의 균형과 필요에 따라 인간까지도 용도에 맞는 규격과 사양으로 생산하고 육성하는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입니다. 이 문명 세계의 바깥에서 나고 자란 야만인 '존'이 "Brave new world"라고 외치는 대목에서 제목의 출처가 드러납니다. 셰익스피어의 책으로 세상과 언어를 배운 존이 문명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터트리며 셰익스피어의 <태풍>에서 한 대목을 빌려 말한 것입니다.
헉슬리는 완벽하게 통제된 멋진 미래 세계를 흥미롭게 그리면서 안정이라는 목적을 위해 자유와 개성을 소거당한 인류의 모습을 특히 강조합니다. 이는 나아가는 것만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명 세계를 향한 뼈아픈 경고입니다. 특히 이 소설은 단순한 형태의 공포와 억압의 전체주의가 아닌, 쾌락과 편안함으로 인간을 길들이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소프트한 '전체주의'의 결함을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책의 줄거리
소설의 배경은 포드 기원 632년의 세계국가입니다. 인간 사회는 철저한 계급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이루어집니다. 출산은 더 이상 남녀의 성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세계국이 운영하는 기관에서 난자 분열을 통해 인공으로 배양되며 각 계급에 맞는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필요한 만큼만 투입하여 생산되고 육성됩니다.
말은 여섯 살에 다 자라고, 코끼리는 열 살에 다 자란다. 그런 반면에 인간은 열세 살이 되어도 아직 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스무 살이 되어야만 완전히 성장한다. 물론 그렇게 지연된 발육의 결과로 맺어진 열매가 인간의 지성이다.
"하지만 엡실론들의 경우라면 인간의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포스터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필요하지 않으니까 주어지지도 않는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소담출판사, 46~47쪽)
이 사회는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community, identity, stability)이라는 슬로건 아래 모든 것이 통제됩니다. 시민들은 '소마'라는 마약을 통해 불안과 고통을 회피하는 휴식을 즐깁니다. 남녀간의 자유로운 성관계가 강요되는 반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내밀한 관계는 금지됩니다. 모든 시민은 "모든 인간은 서로가 공유되어야 한다"라는 효율적인 원칙 아래 살아갑니다.
주인공 버나드 마르크스는 알파 계급이지만 베타 계급에 가까운 왜소한 체격에 염세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입니다. 마르크스가 다른 알파 계급들의 대화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모습에서 전체주의의 큰 틀에 균열을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오히려 갈수록 권력지향적이고 비굴한 모습에 실망감만 커졌습니다. 마르크스와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함께 떠나는 레니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형태의 삶에 본능적인 피로감을 느끼는 듯한 초반의 모습에서 마르크스와 합심하여 선구자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존의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여체로서의 역할만을 한 뒤 결말에는 생사도 알 수 없어 아쉽습니다.
생각해 볼 점
<멋진 신세계>는 90년 전 작품이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예언한 듯한 통찰로 가득합니다. 헉슬리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편리함과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감정과 신체의 불편함을 한 번에 없애고 필요한 만큼의 휴식을 정량으로 취하게 하는 마약성 약물. 오늘날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약물은 이미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물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 등 도파민의 힘을 빌린 잠깐의 현실도피를 휴식과 돌봄(자신과 타인을 모두 포함하는)으로 착각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다섯 개로 나뉜 계급은 책 속에서만 존재할까요? 그네가 있는 놀이터에는 출입이 금지되는 임대아파트의 아이들, 해외여행으로 결석한 경험이 없어 개근 거지로 불리는 아이들, 명품 브랜드의 특정 제품군을 소유하는 것이 계급 그 자체로 인식되는 지금의 세계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멋진 신세계>는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이 아닌, 인간의 본질과 문명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사유의 장입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가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혹은 인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같은 책, 362~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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