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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도스또예프스끼의 <백야>, 짧은 만남, 영원한 빛

by 감밀손 2025. 5. 15.

Nocturne in Blue and Silver- The Lagoon,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between 1879 and 1880)

 

사형을 선고받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Fyodor Dostoevsky, 1821-1881)의 1848년 작품 <백야>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서정적인 초기 작품으로 꼽힙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18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군의관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에 입학했으나, 1844년 사직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1846)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1849년 급진적 사회주의 단체인 '페트라셰프스키 서클 Petrashevsky Circle' 가입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러나 총살 직전 황제의 사면으로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되어 4년간의 유형 생활과 군복무를 마치고 1859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죽음의 집의 기록>(1862),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 <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1872),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등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실존적 문제를 탐구한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인간 영혼의 깊은 고뇌를 날카롭게 포착하며, 종교적 신념과 함께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톨스토이, 푸슈킨과 함께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실존주의 문학과 현대 심리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881년 폐출혈로 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는 레프 톨스토이, 알렉산드르 푸슈킨과 함께 러시아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장입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흔히 인간 심리의 심연을 파고든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대작들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 작품인 단편소설 <백야>는 그의 문학적 여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시베리아 유형 이전에 쓰인 이 작품은 도스또예프스끼 초기 작품의 서정성과 낭만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후기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탐구될 인간 소외와 내면의 갈등이라는 주제의 씨앗을 담고 있습니다.

 

책의 줄거리

이 소설은 페테르부르크의 백야 기간 동안 펼쳐지는 4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름 없는 '몽상가'로, 고독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현실보다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울고 있는 젊은 여인 나스쩬까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백야의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집니다. 나스쩬까는 1년 전 떠난 연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몽상가는 그녀에게 자신의 고독한 삶과 상상 속 세계를 털어놓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몽상가는 나스쩬까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녀 역시 그에게 애정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밤, 나스쩬까의 연인이 돌아오고 그녀는 그를 선택합니다.

소설은 상실과 포기의 아픔 속에서도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는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며, 짧았지만 의미 있었던 그들의 만남을 소중히 간직할 뿐입니다.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를 향해 걸어갈 때 거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서 단 한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 아,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백야>, 115쪽, 열린책들 창립35주년기념세트)

 

<백야>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작품으로, 그의 다른 어둡고 복잡한 소설들과는 달리 순수한 감정과 아름다운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도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도시 속 인간의 소외, 꿈과 삶의 관계라는 도스또예프스끼의 핵심 주제가 담겨 있어,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소외된 영혼들

 4일간의 백야를 통해 고독한 '몽상가'가 나스쩬까라는 젊은 여인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녀가 다른 사람과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짧고 아름다운 사랑의 기록은 그 서정성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살펴보면 <가난한 사람들>, <분신>과 함께 도스또예프스끼의 '페테르부르크 3부작' 소설 중 하나로, 19세기 러시아 도시의 소외된 영혼들을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백야>는 비록 도스토옙스키의 대작들에 비해 짧고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서정적인 문체와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인간 고독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