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

<인간 실격>, 내면의 어둠과 존재의 고통

by 감밀손 2025. 5. 10.

Egon Schiele, Self-Portrait With Physalis (1912)

 

인간 실격

<인간 실격>은 일본 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1948년 작품입니다. 다자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와 함께 20세기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어둠과 실존적 고뇌를 예리하게 포착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인간 실격>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 실격', '불능', '탈락자'라는 개념은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를 표현하는 보편적 은유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자이의 어떤 감수성이 그를 일본 문학의 가장 비극적인 작가로 만들었을까요? 카프카가 부조리한 세계 속 개인의 고립을 그렸다면, 다자이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의 고통과 불가능성을 파헤칩니다. 그는 사회적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진실한 모습과,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의 심연을 냉철하게 보여줍니다. 자신의 내면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을 들여다보며, 다자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그리고 삶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

 

책의 줄거리

<인간실격人間失格>은 주인공 요조의 삶을 세 장의 사진과 그의 수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익살꾼이 되어 사람들을 웃기는데, 이는 진정한 소통이 아닌 일종의 방어 기제였습니다. 도쿄에서 예술을 공부하며 그는 술과 아편, 매춘에 빠져들고, 두 번의 자살 시도와 여러 여성과의 파국적 관계를 겪습니다. 결국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인간 실격"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민음사, 13쪽)

 

이 얼마나 솔직하고도 고통스러운 고백인가! 요조의 이 한 문장은 다자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존재의 절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때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 불안 때문에 저는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같은 책, 16쪽)

 

 

요조의 몰락과 패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됨'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고통은 처음부터 비극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 고통 자체가 인간 존재의 진실을 드러내는 창이 됩니다. 요조가 결국 '인간실격'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결말은 표면적으로는 패배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가 마주한 진실의 무게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Egon Schiele, Plakat der Schiele-Ausstellung in der Galerie Arnot (1915)

 

당신은 인간으로서 적격인가

다자이의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한 인간의 실패와 몰락을 그리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탐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면과 진정한 자아 사이의 괴리, 타인과의 진실한 소통의 불가능성, 삶의 의미에 대한 끝없는 질문 속에서도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고뇌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자이는 파멸로 향하는 한 인간의 여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독과 아름다움을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인간 실격>을 읽은 독자라면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얽매인 삶, 자기 자신과의 괴리, 그리고 사회적 가치와 개인의 진실 사이의 갈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다자이가 그린 세계는 단순한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실존적 위기의 핵심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죽음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인간 실격>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다자이 자신의 삶이 그의 작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와 약물 중독, 그리고 마지막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인간 실격>의 요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작가의 자전적 고백으로만 읽는다면, 그 보편적 의미를 축소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다자이는 개인의 고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고뇌를 포착해 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 실격>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구이자,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 영혼의 처절한 고백입니다. 그 고백의 진정성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